당근도 체찍도 아닌
나는 자상하고 부드러운 엄마는 아니다. 오히려 무식한 엄마로 보여지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웠을 거라 생각한다.
작년쯤인가 아들놈이 내게, 너무 구속적이라며 투덜거린 적이 있다. 다 큰 놈이 자신이 자라온 이야기를 하며 던진 결론적인 말이었다.
“그래서? 내가 네 의식과 사고방식까지 구속했더냐?”라 했더니
“아, 그건 아니네요.” 답이다.
놈은 에미를 ‘당근과 채찍의 대가(大家)’라 긍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말처럼 나의 교육방법에 대해 그렇게 우호적이진 않은 것 같다. 딸아이는 엄마의 방법에 이의 없이 손을 들어주지만, 순종적이고 인내심이 많아, 꾸지람 받을 일도 그리 없던 아이가 들어 준 손이니 그 양순함의 표출일 뿐 큰 신빙성은 없다.
한번은, 방학 때마다 우리 집에서 지냈던 시골 조카들이 이 작은 엄마가 큰 집에 방문한다하니, 지들 방에 닥지닥지 붙어둔 GOD멤버들 사진을 띄어내야겠다 하더란다. 전해 주는 큰 동서에게서 ‘뭐 그리 무섭게 아이들을 가르쳤느냐’는 간접적 항의가 감지되었던 일이다. 나는 조카들에게도 매서운 사람이었다. ㅎㅎ
주말에 온 딸아이가 컴퓨터 앞에서 뭔가를 할 때 내 물음에 답하는 양이 좀 튀튀거리는 듯 들렸다. 사실 그런 말투 때문에 내 감정이 흔들린다든지 섭섭하든지 한 건 아니지만 한번은 짚어줘서 제 그러함을 인식시킬 필요는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돌려서 말할 줄 모르는 나는 직격탄이다.
“요즘 너랑 말하기 싫은 거 아니? 튀튀거려서?”
“엄마도 그러신 거 아세요?”
에고 결국은 내 탓이다. ㅎㅎㅎ
세상을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지 어렴풋이 감지된 즈음에 오니 다른 사람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는 게 느껴진다면 더욱 더 감싸주고, 안고 주고, 내어 줄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사는 게 훨씬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사실을 일찍 깨우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 있다. 힐책과 비난과 까탈스러움이 더 짙었던 나였으니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뭐라 말할 자격도 없지만 세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훨씬 행복해 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면, 삶이 얼마나 풍만해지는지 인식할 터이고 그러함은 어떤 어려움도 능히 감내하고 극복할 힘을 갖게 된다 확신한다. 그렇게라도 한마디 말을 던졌으니 감지는 했을 게다.
잘 살기 위한 지혜란 따로 없다. 내가 받은 작은 혜택 하나에 많은 사람의 수고가 있었음을 알게 됨에서 시작된다. 얻고자 하는 것이 내가 감수할 고통보다 나은 것이냐를 구분하는 능력으로, 다른 사람도 나만큼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채워져 있으면 되는 거다.
아빠와 누나도 녀석을 촬영하기 바빴던... 녀석은 잘 살고 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