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長
녀석이 제 방이 해가 비추지 않아 싫다며 이사 가기를 원했다.
제 아버지는 아들 앞에선 아무 말도 않다가
"감지덕지 한 줄 알아야지, 집에서 다녀도 될 걸 학교 가까운 곳이라 좋다하여 구해 줬더니, 뭘 또 옮기겠다고...."
그런데, 엄마인 나는 생각이 다르다.
나는 녀석을 잘 안다.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에 대해 남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말하지 않는다는 걸. 나름 신중하게, 나름 부모님 입장을 생각하며 표현한다는 것을.
옮겨주자는 내 의사에 남편은,
"옮겨 줘. 그럼."
알아서 하시게나 하는 그 말 속에 있는 비협조적인 요소를 읽는다.
녀석에게, 아빠에게 말씀드려 보라 했더니,
제 아빠는 딱 잘라 대답하지 않고, 이러 저러한 말을 덧붙였다.
"아버지, 그건 제가 다 생각해 보고, 실천해 보고 한 거에요. 그냥 안된다라고 하세요. 그럼 그렇게 알게요."
부자의 대화를 듣던 나는 녀석의 어릴 때 주고 받은 이야기가 문득인다.
녀석이 4살인지 5살인지 어느 날,
"엄마, 엄마, 아빠는 해라, 엄마는 하지 마라, 아빠는 해라, 엄마는 하지 마라. 그럴 때요 난 어떻게 해야 해요?"
엄마, 아빠의 의견이 다를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아이가 신퉁방퉁 하였다.
“그 땐 아빠 말씀을 들어야 해. 아빠는 가장이시거든.
‘가’는 집을 말하는 거고, ‘장’은 대장을 말하는 거야. 아빠는 우리 집 대장이거든.”
그날 저녁 녀석은 제 아빠가 현관에 들어오는 기척이 있자 달려 나갔다.
“아빠, 아빠, 난 알았어요. 엄마는 해라, 아빠는 하지마라 할 때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지요.”
“그럴 땐, 투표로 결정하는 거야.” 하였다. (이전에 게임기 살 때 투표를 한 적이 있으므로)
아이는,
“아빠 말대로 해야 되요. 아빠가 대장이니까요.”하며 엄마가 가르쳐 주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마, 그날 남편의 기분은 매우 좋았을 거다.
그날 이후 녀석은 아빠가 더 센지 안 센지 확인하는 테스트를 가끔 했다.
녀석이 비싼 도넛을 사 달라하면, 나는 비싸기도 하지만 달아서 좋지 않으므로 안 된다하고,
옆에 있던 남편은 사 주고 싶어 머뭇거릴 때,
“아빠, 아빠는 엄마한테 당해요?” 하는 식의....
그럴 때마다, 나는 재빠르게 내 주장을 철회하곤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