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저도
산에 가려고 물 끓이고, 옷 입고 장비 챙기다, 꼬릿글 63개 보고 컴 앞에 다시 주저 앉았다.
많은 사람이 가는 산행은 'no'다. 그냥 혼자가는 게 나을 듯
오늘은 집안 청소나 샅샅이 하리라 하다,
며칠 간 너무 집에만 박혀 있는 것 같아 나서렸던 허겁지겁 등산차림이 싱겁다.
에이, 오금희나 한 판 해야겠다.
이런 내 행위를 보니 문득
'百技不如一誠 千思不如一行'
이란 문귀가 떠오른다.
재주가 많아도 한 가지 성실하게 하느니만 못하고, 천번을 생각해도 한 번 시도한만 못하다는
준비 단계라하지만, 생각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확고하게 잡혀서 뭔가 시도할 단계도 아닌 것도 같고...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15 여년 전 글씨에 일가견 있는 한 분을 만나 그 분 글씨에 빠져 그 작업실을 드나들며 글씨 하나 얻으려 애쓴 적이 있다.
당시에 아이들이 새 학년만 되면 가훈을 적어오라는 과제가 매년 주어졌던 터라,
없던 가훈도 만들어야 할 때였으니, 두루두루 숙제용으로라도 하나 필요하기도 했었다.
오정(글씨를 쓰신 분의 필호) 선생님께 좋은 내용 없냐 여쭈니 여러 문귀를 내미신다.
그 중 가장 내 맘에 든 문귀였다.
어렸던 우리 두 아이들을 위해서도, 한 문귀씩 써 주시고 하여, 병풍을 두를 수 있을 만큼 많은 글을 얻었으니 성공한 셈이다.
액자로 만들어 여기저기 나눠어 주며 인심은 내가 쓰고...
지금은, 깨끗한 벽이 좋아 이것 저것 다 띄고 사신도와 자수 액자 두 개 그리고 그 서예 두 점만 걸려 있다.
그림을 좋아하였던 나는 거실 네 벽면을 가득 그림을 걸어두었었는데,
그림 하나 내려 그 자리에 글을 거니, 그 옆의 남은 그림들이 그렇게 초라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후 그림 그리던 붓을 다시는 들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글씨에 왜 '藝'자가 붙는지 이해가 되었다고나 할까,
서예에 매료되어, 선생님의 연습실 문이 닳도록 다녔다면 좀 과장이지만, 욕심으로 자주 드나든 건 사실이다.
지금은 벽면에 덕지덕지 거는 게 싫어 나머지는 창고에 넣어두곤, 위 두 가지만 남겼다.
지족자부(知足者富)야 깔끔하게 받아들일 문귀지만,
'천사불여 일행' 요즈음의 내 망설임의 답인 듯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