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후에
40년 만에 경동 친구들을 만났다.
나이가 가져다 준 흔적 외엔 어린날의 얼굴로 눈에 익다.
밝기와 투명도는 각기 다르다겠지만, 이제 그들은 제 영역에서 빛이 되어있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삶이 보인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 지난 세월, 하룻밤 꿈같이 스친다.
20여년 만에 만난 누구는 이미 늙어버림을 한탄하기에,
내심 '아직 그 20여년보다 긴 세월이 남았 건만.... '하는 생각이 번뜩였어도. 쉽게 말하지 못했었다.
지나버린 세월 위에 버티고 있는 '나' 그리고 함께한 존재들에 대한 중대함의 인식이 있어서였다.
열심히 살아 온 그 시간들을, 순간 삭제 혹은 포멧해버리려는 태도가 과연 괜찮은 건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도 했었다.
물론, 지운다 해서 지워지는 것도 아니고 살린다 해서 살려지는 것도 아니지만,
한편으론 아무 것도 아닌 게 세월이요 그게 인생일 수도 있다.
젊음을 원하는 사람들 의식 속에 있는 건 뭔가?
육체가 즐길 수 있는 그 싱싱함? 앞날이 창창하다는 희망적인 의식?
돌이켜 보면, 살아오면서 갈림길에 다았을 때, 어느 길을 선택했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함에 저절로 갈 길이 보였었고,
내 선택이 아닌 인도된 행로로 걸어왔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어떤 길이었든 기쁘고 충실하였다면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겠다는 믿음이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 벗어버리지 못하는 미련이 있다면 번뇌요 집착일 뿐이리라.
현재가 중요하다. 미래는 아무 것도 아니고, 과거는 더더욱 아무 것도 아니다.
원망보다는 희망이 좋고, 탓하기 보다는 풀고 겪어가며 새 길로써 걸어 감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해서, 누릴 수 있으면 누리고, 배풀 수 있음 마음껏 배풀자는 맘이 생긴다.
인생 별 거 아니다. 부귀영화도 내 피부로 그렇다 해야 그런 것일 뿐.
허나, 그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