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 사람은?
우리 동네 북한산.
수유리에서 대동문을 올라 대성문으로 나와 정릉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가입한지는 한참 되었는데, 동네 산행 공지가 있기에,
초보도 괜찮으냐? 혹시 민폐는 되지 않을지 염려된다하니,
의지만 가지면 충분하다는 대답 글에 참여를 굳히고 일요일 아침 배낭을 멨다.
34명이나 되냐며 놀라는 내게, 다른 날보다 적은 수란다. 보통 50여명이 산행을 한단다.
리더는 하산 후 뒤풀이 못하는 셋을 확인하고, 사람 수에 맞춰 바로 예약이다.
늘 많은 사람이 있으므로, 사전 답사는 필수란다. 사전답사에는 뒤풀이 장소도 정해둔단다.
겨울 산이다. 눈자욱이 남아있고, 얼음이 성곽길에 번들거린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천천히 느릿느릿이다.
가는 길에 대장 와이프가 가져온 떡과 막걸리도 먹고, 총무가 가져온 감도 먹었다.
운영진들의 봉사가 대단하다.
대동문을 지나 성곽을 따라 대성문을 거쳐 정능길로 하산이다.
산행은 좋았다.
군데군데 얼음길이 있어 급 조심할 구간은 있었지만, 성곽을 따라 걸으며, 펼쳐지는 북한산의 전경에 흡족해 하였다.
뒤풀이 장소. 나는 가능하면 구석진 곳으로 가 앉았다.
뒤풀이 참석은 그저 애쓴 사람들에 대한 내 예의다.
산행을 이끈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한 수순일 뿐이다.
우연히 점심도 함께한 두 신사와 합석이다. 둘은 정중하고 침착하며 예의를 갖춘 사람들이다.
네 사람 한 테이블인데, 내 앞의 여자 분도 처음이고 내 옆의 신사도 처음,
대각선으로 앉은 사람은 한 운영자와 친분이 있었고, 내 옆 사람은 대각선의 사람과 죽마고우고 그 운영자는 모른단다.
앞에 앉은 여자는 닭띠라고 하는데, 같은 인물(운영자 중 한 명)과 초등학교부터 동네 친구란다.
그 한 사람과 연이 된 셋과 내가 한 테이블이다.
나를 포함한 셋은 이 산악회 처음 참석 대각선에 앉은 신사 분은 두 번째.
우리 옆 테이블엔 여자 분 네 명이 앉았다.
넷은 이야기 속의 연배로 추정컨대, 쉰 대여섯쯤 된 또래들이었다.
술잔이 오고 가고 시끄럽다.
우리 테이블 두 여자는 술을 못하니 콜라, 사이다를 주문해 준다.
옆 테이블 네 여인네는 우리 테이블 남정네들에게 연발 술을 따른다.
내 옆에 앉은 사람, 후덕한 사업가 같이 생겼다.
좀 작은 듯한 중키에 몸은 두툼하다. 눈썹은 짙은데, 양 눈썹 끝이 위로 삐쳐섰다.
옆 여인네들이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며, 열심히 제 신상 이야기를 한다.
컴퓨터를 할 줄 모른다기에 자판 연습부터 해보시라 하니
앞의 친구가 “에-에, 저 친구에겐 어림없는 얘기다.”며 잘라 말한다.
주위가 시끄러우니, 귀 기울이지 않음 들리지 않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남양주에 철(판?)장사를 한단다. 직원은 저보다 연배가 다 높은 여섯 명인데,
IMF 때 40여 명 중 추린 사람들이란다.
죽을 때까지 같이 하자하고 하겠다고 다짐한 가족같은 사람들이란다.
6남매 넷째이고, 아들 중 둘째, 형제 중 딸들은 다 잘 사는데,
아들들은 저 빼곤 잘 안 풀려 어머니 봉양은 제가 한단다.
며칠 전 제 어머니는 제게, 네 덕에 참 편하게 살고 있다고 고맙다 하셨단다.
그래서 기분이 좋단다. 올 초엔 살림이 어려운 남동생에게도 지원을 했단다.
애들은 다 컸냐 물으니, 전화기 사진을 펼쳐 젊은 청년 두 명을 보여준다.
표정도 밝고 잘들 생겼다.
와이프 사진은 없냐? 물으니, 찾지를 못한다. 전화기 다루는 게 서툴러 그렇단다.
참 반듯하게 사는 사업가구나 하며, 바른 행실 덕에 저리 맘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식사가 끝나고 1/n 식비를 갹출할 때다.
그는 두툼한 지갑을 꺼내, 우리 테이블 사람들 회비를 내 주겠다한다.
친구에게 지갑을 건네주며 처리하라는 시늉이다.
이런 데선 1/n 해야 하는 거라며 그러지 마시라 하였다.
결국은 인당 2만원 총 8만원이 그 지갑에서 총무에게 건네졌다.
그걸 본 옆 자리 네 명 중 한 여자가 “오빠, 나두 나두.” 한다. 졸지에 2만원이 더 나왔다.
이후 그 여인네는 이 남자에게 착 엉겨 붙어 정신을 뺀다.
아마, 2차로 노래방을 가는 것 같았다만, 얼른 자리를 차고 나왔다.
악수로 작별하니, “컴퓨터를 할 줄 몰라서……” 란다.
“저기 친구 분이 할 줄 아시니, 오늘처럼 같이 오시면 되겠네요.”
대장 내외에게, 오늘 산행 좋았노라 인사말을 건네고 총총 걸음으로 귀가다.
집에 온 나는, 컴퓨터를 열고, 가입인사말과 꼬릿글을 지우고 탈퇴하였다.
남편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니,
헬스를 같이 다니는, 배드민튼 모임의 여러 여자 중 한 명을 와이프 삼은 한 남자가 사람들에게 해 준 얘기인 즉슨,
'남녀 단체로 체육활동을 하는 곳에 절대로 와이프 보내지 마라!' 라는 거였단다. 쳇 쳇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