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딸아이 결혼3 - 상견례

혜아니1 2014. 11. 17. 14:43

  결혼 반대의 이면에는 자신의 열등의식이 깔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채워지지 않을 욕구의 반작용이 60%, 불확실한 미래를 붙잡는 어리석은 상상이 40%. 당사자의 의견에 대해 제 3자일지 모르는 부모가 반대를 고집하는 것은 황당한 것일 수도 있다. 딸아이의 “이 사람처럼 성격 좋은 사람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요.”라는 말에서 가당치 않는 내 판단을 갖고 성년이 된 자식의 견해를 무시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했다.

  자식을 키우면서 특히 아들 녀석의 작지도 않은 작은 키를 아쉬워했던 내 욕심의 크기. 참으로 비속한 잣대였고 또한 그런 일도 아닌 일을 붙잡도록 잘 커준 자식들에 대해 고마움을 가져야 하는 반증이기도 했다. ‘복 많은 사람’이란 찬사를 받기에 충분할 만큼 내게 속한 이들은 아름답다. 아무 하자 없는 사위를 놓고 되니 안 되니 하며 귀중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아찔한 남용의 순간들이었다.

 

  상견례! 서로가 어렵고 조심스러운 자리라, 입을 옷가지가 탐탁지 않은 남편은 양복을 한 벌 사기도 했다. 우리 집 옷걸이의 1/3은 그의 옷이고 그 중 반은 양복인데, 죄다 헐렁하고 넉넉한 품의 구식이라 탐탁하지 않나보다. 나 역시 평소에 잘하는 귀걸이는 착용하지 않았다. 사돈댁 역시도 예를 다하는 모습이 보인다. 품격이 높은 점잖은 분들이었다.

  서로 자식들을 통해 상대의 가족 친지의 현 상태에 대해 대강은 안다. 바깥 사돈의 전직 교장님이었던 누님들과 안사돈의 올케도 교직에 몸담고 있으셨단다.

“교직은 중 참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르게 살아라, 좋은 일 해라.’라는 바람직한 말을 하며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공부도 가르치는 좋은 일을 하며 그로 봉급 받아 생계도 가능하고……, 이젠 연금도 많이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 만큼 좋은 직업이 어디 또 있겠나 싶어요. 물론 어떤 사람을 어떻게 만날지는 미지수지만, 그야 어느 직업군에도 있을 수 있는 부담이고요.”

  사돈은 결혼으로 인척이 될 귀중한 사람들이다. 서로가 하는 말 속에서 살면서 추구해야 하는 내용이 같음을 확인해 본다.

  “혜정이 말에 의하면 (아드님)인품이 좋다네요.” 가 내가 던진 첫 말이고, 그 말에 반가움을 표시하며 잘 기른 딸, 며느리로 맞게 되어 기쁘다는 게 그 분들의 응대였다. 예단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과 우리나 그 댁이나 간단한 결혼식이면 좋겠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빠른 시일에 결혼시킵시다.”는 바깥사돈의 말씀은 성공리에 상견례를 마친 증표였다. 특히 딸아이를 며느리로서 무척 반기는 사람들이었기에 조심스러움은 반감했고 혼례의 한 절차로서나 필연적으로나 어떻게 해석해도 반가운 만남이 되었다.

  상견례 식비는 대부분 신랑 댁에서 부담한다는 경우를 전혀 알지 못한 남편은 화장실을 다녀오며 밥값을 치뤘다. 덕분에 일 주 후쯤 사돈댁의 극구 의지로 또 한 번의 식사자리를 갖게 되었다. 사돈댁 입장에서 우리가 식비를 낸 것이 부담스러웠겠지만, 그로 해서 오히려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다. 서로가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만남은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