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결혼6 - 결혼식
간략한 결혼식을 치루려는 의도와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에 많이 수월했다고 여긴다. 옛날 같으면 잔칫날 먹을 음식 마련에 세간살이 준비하랴 온갖 일로 혼주의 넋이 다 빠지겠건만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음식은 식당에서 하고, 살림살이는 시장이 많고 넓어 오히려 많은 정보로 골치가 아프지 준비 차 바쁠 일은 아니니 말이다.
앞서 딸을 시집보낸 친구의 소개로 한복 빌리는 일부터 매사가 쉽게 진행됐다. 결혼식날 혼주로서 꾸미는 일이 결혼식의 모두 다일 거란 생각과 달리 그 일은 일 축에도 끼지 않았다. 시간이 나는 주말에는 딸의 드레스를 보러 두어 번 드레스샵에 갔다. 혼주인 친정어머니의 의견이 중요하다며 별 필요도 없이 여러 번 다녀 오게 된다. 아이들은 드레스며 스튜디오며 메이크업 등의 일로 정말 분주한 시간을 갖는 것 같다. 찍은 사진 중 괜찮은 것을 찾고 고르는 일이 만만찮았는데, 그 과정을 기계적인 과정을 거치기보다 수작업을 한다는 느낌을 받도록 차근차근 치밀하게 잘 해냈다. 내게는 무엇보다 청첩하는 일이 큰 부분이 되었다.
결혼식,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루고 싶은데, 막상 일이 코앞이니 연락하지 않아 서운해 할 사람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가족만의 혼례식이 아니다보니 일단은 알리는 게 맞겠다 싶었다. 오고 안 오고, 반갑고 반갑지 않고는 연락받은 그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누구에게 알리고, 누구에겐 말지 여전히 복잡해진다. 연락을 하는 게 좋은지 판단이 안서는 사람이 꽤나 많다. 직장에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르려 했지만 이미 알게 된 같은 부서 사람들도 있다 보니, 기관장님과 친목회장에겐 알려야 예의를 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앞 2주 전에 아들 혼사를 치룬 사람이 있어 참고가 되기도 했지만 그와는 좀 다르게 대표성을 띈 몇에게만 청첩장을 주며 조용히 치르려한다는 내 심경을 전하였다.
또한 청첩장이란 것도 봉투에 딱 넣어 보내기 좋은 형태로 앞에 놓여지는 것도 아니다. 인쇄된 청첩장 덩어리와 봉투 덩이가 상자 안에 넣어진 체로 배달된다. 꺼내어 접고 명함판 안내 사진도 끼워 봉투에 넣어야 낱장 한 장이 완성이다. 주소는 전화든 연락망으로든 일일이 알아놓아야 한다. 그 주소를 봉투에 적어 우편으로 송부해야 한다.
한글을 잘 다루는 내가 머지로 주소록을 라벨지로 만들었지만 정작 나는 전화도 아닌 메시지나 카카오톡으로 결혼식이 있음을 알렸다. 남편은 대부분의 지인에게 우편으로 청첩장을 보냈다. 딸은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겐 우편으로 보내고, 거의 만나서 알리는 것 같았다. 남편은 일반적인 룰대로 혹은 상식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이고 나는 내 기준으로 받기를 선호하는 통신 수단을 취한다. 모바일 청첩이 빨리 나왔으면 그걸 보냈을 터인데.....
딸은 친구들에게 결혼식날 유념해야 할 사항을 전해 듣고 일일이 체크해 두었다. 본인(신부)의 소지품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축의금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축의금 받는 동생의 친구들에겐 밥은 든든히 먹고 오고 일이 끝난 다음엔 그들끼리 가서 뒤풀이를 하라는 등을 결혼식날 비일비재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에 대비하였다. 예식장에 지불할 돈도 절약을 위해 할인 상품권으로 구입하여 놓았다.
5시 결혼식은 여유로운 준비 시간을 갖게 했다. 딸은 화장하고 드레스 입고 바로 식장으로 간다 하였다. 나는 메이크업 전문가를 집으로 불렀고, 한복은 전날 가져다 놓았다. 남편, 아들과 나 세 식구는 집에서 출발했다. 사위의 외삼촌 친구분이 딸을 위해 만든 드레스는 그 분 말대로 명품이었다. 그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아이를 보니 만족스럽다. 그리곤 식장 입구에서 화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식이 시작되기 전 식장 도우미들은 혼주어머니들에게 촛불 켜고 인사하는 방법을 실습하게 하였다. 결혼식 첫 순서는 신랑 입장도 신부 입장도 아닌 양가 모친의 촛불 켜기 부터다.
아름다운 신부인 딸의 결혼식은 훌륭하게 치루어졌다. “식장은 우아했고, 화객들은 기품이 있었으며 음식은 맛있었다.”고 답례차 만나는 모두는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씩 해 주었기에 미루어 아는 사실이다. 결혼식장은 비고 식당은 붐비는 다른 결혼식과 달리 식장에도 180석이라는 식장 안이 빈자리 없이 빽빽하다. 1시간 반 간격의 예식 시간도 있고 폐백을 치루지 않겠다는 사돈댁의 실속 있는 제안은 예식 다 본 후 밥을 먹어도 바쁘지 않게 한 것 같다. 그래서 신랑신부는 귀가하지 않은 대다수의 하객들을 식당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예상보다 하객이 많아 식당 550명의 만석을 넘겼다. 음식 준비차 예약 인원의 110% 만을 고집하던 식장 측의 계약 조건에 아찔했는데, 다행이 다음 시간 결혼하는 집의 하객이 적어 우리 손님을 받아주는 바람에 일이 풀렸다 한다.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했어야 하는지 참 골 아픈 문제가 될 뻔 했다. 그 바람에 사돈댁에서는 여분의 식권을 우리에게 주고 나중 온 그 댁의 하객을 다른 음식점으로 안내하느라 한참을 힘들었을 게다.
둘은 공항 근처 호텔에서 밤을 지내고 열흘이 넘는 일정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다녀와도 제 집에 입주를 바로 할 수 없어 한 주 이상은 제 본가에 머물러야 하지만 모두에게 부러움을 사는 허니문을 가졌다.
결혼식 전에는 청첩장은 어떤 게 좋은지 고르는 일로 몇 번을 수정하게 하여 본의 아니게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줬다. 만든 청첩을 접고 봉투에 넣는 일은 단순 노동이니 거기까지도 괜찮은데, 누구에게 보내고 누구에겐 말지로는 예민한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결혼식이 끝나니 또 답례를 위한 과정이 기다린다. 답례사를 만들고 이번엔 참석한 사람들의 주소록 라벨을 만들어 우편으로 보내고, 전화하고 메시지 보내고.... 답례 행사는 식전보다 더 바쁜 일정이 되었다. 나중에 천천이 해도 될 일이라고들 하지만 그게 끝나야 진짜 마무리가 되는 거란 생각에 뒤로 미루기는 일이 되지 않는다. 얼른 해치워야 한다는 바쁜 마음이 내 본성임을 인지해 본다.
그나마 쉽게 쉽게 치뤘다는 우리 결혼식도 일련의 복잡함이 있다. 가족만 모여서 간략히 치루는 결혼식이 된다면 이 많은 번거로움 없어도 될 것 같다만, 결혼은 당사자의 의사가 더 중요하기에 내 의도는 묻어야 할 듯 싶다. 사실 번거롭네 어쩌네 운운하기엔 진정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다. 부모의 입장으론 자식을 낳아 기름의 귀결이요 절정의 순간이요, 인생 살이에는 정수의 순간이 되는 결혼!
이 대사를 치루는 내내 분명 행복했다. '이런 복잡함이 필요한 건지?'라는 의문도 있었지만 지나고보니 하나 하나가 즐거움이 내재된 일들이었지 싶다. 기쁨의 덩어리 변해버린 2014년의 몇 개월, 참 경건하고 깊은 감사의 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