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실크로드 여행을 마치고

혜아니1 2017. 5. 31. 17:06
   아프리카에 이어 중국 실크로드 여정을 마쳤다.  
   연이은 해외 나들이를 두고 남들의 이런 저런 평은 내겐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하고 싶은 일 하자는 의도가 첫째였고, 이러다보면 뭔가 잡히는 게 있을 거라는 기대가 한 구석에 있었지만 딱히 내 일상에 따로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될는지 모르겠다. 
   여행이 행복한가 하고 묻는다면 뭐라 답해야 할지....  내 여행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렇게 원하는 대로 누릴 수 있던 여건에 무한한 감사가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다가 온 것이 있음은 큰 소득이다. 원하는 대로라는 그 원함이 개인의 성품에 따라 기준이 다르기에 내 조건에 한정하여 이야기 하자면, 결국은 철학 혹은 종교적 의미로 결론이 나고야 말더라는 소견이다. 
   아프리카에선 먹기 위해 머리를 땅에 대고 들지 않던 수많은 동물들과 한 마리의 대장 수컷이 되지 못한 다수의 떠돌이 수컷들의 비애가 보이고, 사막에선 걷기 싫은 걸음을 거부하는 낙타의 울부짖음에 눈물이 흘렀다. 
   살아가는 방법이 인간과 동물이 다르고 의식도 차원도 각기 다르겠지만 살기 위해서 갈 수 밖에 없는 길, 척박하든 풍요롭든 삶은 고달프다는 생각이 끈임 없이 이어졌다. 풍요 속에선 요구가 더욱 커지고 척박과 구속에선 문제해결을 위해 고된 삶을 견뎌야 한다. 
   일정에 끌려 더 내 맘대로 쉬고 가고 하지 못하는 것이 내 여행의 대부분이었으니 자유의지로의 행보에서 바라보는 것과 다른 일면도 있겠지만 보는 것 겪는 것에서 늘 와 닿는 것은 살아가는 생명체에 대한 안쓰러움이다. 그건 밖으로부터 내부로 던지는 자신을 향한 메시지로 여겨졌다. 
   가져다주는 밥상이 되기까지의 수많은 이들의 노고에도 입에 맞지 않아 편식을 하는 자신을 본다. 돌아다니다 기거하게 되는 호텔의 평안과 오고 감에 많은 이들의 수고로 내 움직임의 안락과 풍요가 유지되고 있음에 감사나 기쁨이 있지만 한 편에 줄기차게 아픔도 인다. 
   각 나라들의 환경과 역사와 정치 속에 투쟁하고 극복하려는 삶의 노고가 공허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염세주의자가 아니다. 허나 그런 것들이 가져다주는 느낌은 생명의 존중 넘어서 있는 살아가야하는 서글픈 운명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어이하리. 그저 묵묵히 계율을 지키며 살아갈 뿐 내가 좌지우지하며 의욕내서 해낼 일은 단 하나도 없다는 걸 인지하니 문제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실크로드는 고달픈 삶을 내세(來世)나 절대자 아님 평안에 귀의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그림과 불상이 2000년 역사를 담고 서 있는 길이며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에 능통하여 삼장이란 별칭을 가진 고승 현장의 길이기도 했다. 또한 이민족의 땅을 내 땅이라고  못 박을 이유를 갖게 하려는 사료(史料)를 정비하고 비치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와 계획된 표시로서의 말뚝 박기도 보인다.
   내가 주목한 것은 삶이다. 정치적이든 문화적이든 세파에서 구분지어 놓은 양식으로서가 아닌 실제적 삶의 궤적! 그래서 그 누구보다 승려 현장에게 관심이 간다. 
   불교 유적지와 당시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자세하고 명확한 기록을 남겨 중요한 역사자료를 제공했던, 천축의 나란다사원에 자격을 갖춘 승려로 공부할 수 있던 천재이기도 했던 현장은 그 셀 수 없는 수고로써 부처의 법을 알아내었을까? 그의 노고를 보면 부처가 가르치신 진리를 향한 말씀의 내용을 편히 앉아 듣고 볼 수 있는 시공을 넘나드는 이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무한한 감사가 인다. 이렇게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큰 노력 없이 고통 없이 편히 보고 들을 수 있음은 대단한 축복이다. 더불어 그 법을 갈구하여 수많은 역사 현장에서 험하게 살아갔을 많은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읽으니 깊게 낮춰진다. 
   생이란 고통을 품고 있는 것, 석가가 알아내시고 일러주신 그 길이 최고의 선이고 답이라는 절절한 믿음이 한 줄기의 큰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