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마련해준 호텔 예약으로 어버이날이 낀 2박 3일간 경포에 머물렀다.
시모님이랑 함께 갈 요령이었는데, 댁에 돌아가시겠단다.
근무하고 오후에 출발한데다, 시댁을 돌아서 도착하니 어스름밤이 되었다.
호텔이 낯이 익다. 바닷가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 1971년에 세워졌다고?
언덕 위에서 올라 앉아 바다를 연모하는 듯 세워진 건물 한 동. 동해관광호텔 바로 그 호텔이다!
경포에 오면 어딘지 찾곤 했던 곳, 현대호텔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
모래사장과 솔밭을 거닐며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니 딱 1975년의 그 모습이다.
4월쯤이었던 것 같다. 봄바람이 훈훈하고 햇볕은 좋았고,
멋모르고 담그던 바닷물 어찌나 차갑던지...
그 백사장엔 지금은 연락이 끈긴 홍 선배와 둘 만 있었던 것 같다.
공식적인 행사가 아닌 사사로운 첫 여행을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
그곳에 예약을 하고 잠자리를 잡은, 한 살 위인 고등학교 선배의 그 용기와 손씀이 참 대단하여 내심 탄복 했었다.
그 조숙함에 의해 상대적으로 더욱 작아진 나는, 어리지만 당찼던 한 여자의 홀로여행의 여러 면에 방편으로써 동반자였다.
모든 비용 부담은 선배 몫이었고..
명랑함으로 그득할 것 같던 바다라는 곳은, 파도소리에 묻어나는 침묵으로 고독 했다.
바다에 대한 무지개와 같은 동화적 환상이 깨지기도 했지만, 황망하고 공허하며 차고 깨끗한 모습은 강하게 각인되었다.
발자국 하나 없는 깨끗하고 넓은 모래사장과 맑은 물!
백사장과 잔잔한 파도로 해서, 그 스무 살의 고독이 세월을 넘어 아려온다.
트윈과 싱글 침대가 燈을 얹은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좁은 방을 채우고 있다.
어린 날의 그 고독과 슬픔의 문제들을 답 맞추듯 풀어보는 일로, 게서 묵은 이틀동안 각각 맡은 침대 사이가 천리마냥 멀다.
참 무거웠는데.... 세월 속에 한 덩이씩 흘려졌나보다.
이튿날, 정동진 못 미처 등명락가사에서 회유하여 소금강을 가다가 피로가 몰려오는 바람에 바닷가로 되돌아 왔다.
경포해수욕장을 따라 남쪽으로 이어진 송정해수욕장.
송정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바다를 낀 드라이브 코스요, 산책코스다.
솔밭사이로 깨끗한 모래와 잔잔한 파도의 부드러운 허그가 연이어짐을 본다.
그 몇년 뒤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따라 온 교회 수련회 장소였던 송정해수욕장은 장엄한 일출이 있었던 곳이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볼 수 없던, 거대한 황금길 위의 커다란 해. 아침해인데도 눈이 부셨다.
단 몇 분의 상면도 거부하던 태양이 종일 이글거리던 그 몇 날들. 튜브에 의지해 종일을 물속에서 놀면서도 고독하기만 했던 바다다.
놀면서도 고독한 건 피곤하게 일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다.
산 넘어로 해를 잃은 봄바다는 그 강한 햇살의 기억마저 가져가 차갑기만 하다.
경포대에 올라선, 지금보다 세 배나 넓었다는 경포호를 상상하며, 호수와 바다를 보며 감탄에 젖고 사색에 젖었을 그 옛 시객과 함께 한다.
선교장에 들러선 과객들을 수발했을 여인네들과 노비들의 노고가 더 생각키워지는 연유는 뭔고.
내 여행길엔 늘, 떵떵거렸을 지배자들에겐 조소가 보내지고,
힘들고 가난했을 농노와 여인들에겐 그 수고와 아픔을 달래주고픈 동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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