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여행 중 보여지는 일련의 역사적 사실들이 불편했던 일정에 더하여, 여행 후에도 주욱 가라앉아 있었다. 정리를 해야하는데, 도통 의욕 상실이다. 일주일이 지나고 두 주째 접어들며 복귀는 되었지만, 세상사에 대한 염려는 떠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으면, 고도의 지능을 가진 인간은 결국 멸종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민족, 내 종교와 다르더라도, 의식을 가진 인간이므로 다만 인간이므로 존중하고 존중 받아야 하는 '근원적인 범 인류 사랑'을 갖추지 못한다면 인류는 결코 안전하게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세상에는 여러 인종, 다양한 종교, 다양한 문화가 있다. 관습에 의해 표현 방식도 생각도 다르다. 설령 나와 상반된 의식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오랫동안 이어 내려온 그들 문화의 결정으로라면, 무시하기 보다는 이해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수용성도, 제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종 청소를 위한 살상행위를 하려 한다면 어찌되겠는가? 나, 내 가족, 내 이웃을 지키기 위한 항쟁이 필요하게 될 게고, 어쩔 수 없이 무력이 동원되어 고초를 겪게 될 게다.

  지배를 당하고, 그에 따른 학대를 받고 나아가 가까운 사람들이 살상 당하는 현장에 있었을 슬픈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들. 한반도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열강의 침략과 지배층의 착취가 있으면 먹고 사는 일에도 정신 차릴 틈 없어, 절대적인 가난과 핍박에 시달려야 한다. 제 이익을 위해 타인의 삶은 안중에 없는 사람들 속에 살아가야 함이 슬프게 여겨진다. 전쟁과 싸움 속에는 양보는 파멸이라는 무자비한 인식이 개인에서 나라간, 민족간, 종교간 치열하게 일고 있던 현장을 돌며 이는 아픔이다.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이 정당한 건지 아닌지....

  "사랑하라! 네 원수도 사랑하라!"는 구원의 메시지로 일깨우려는 성현들의 아픔을 다소나마 읽어 본다. 새로이 각광 받고 있는 win-win의 지혜가 필요하다. 단군이 말씀하시던 홍익인간의 이념은 얼마나 값지고 정수된 아름다운 가르침인지 절감한다.

 

 

  발칸 반도의 국가들의 분쟁의 이면에는 척박한 삶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여름은 건조하고, 겨울은 대륙의 영향을 받아 매우 춥단다. 풍부한 농산물을 기대하기도 힘들고 풍부한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반도로 많은 열강들의 침략을 받던 지역이다.

 

  동로마제국, 오스만제국의 전성기엔 그들의 지배하에 있었고 분쟁의 씨앗이 된 유고슬라비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배하면서 슬라브 민족이 결집하여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수립(1918)했었다. 1929년에 알레산다르 1세는 국명을 유고슬라비아로 바꾸었다.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에 점령되었고, 점령기 동안 티토가 이끄는 공산주의자들이 게릴라전을 전개하다가 독일의 패망으로 해방을 맞았다. 그 해 11월, 티토를 수반으로 하는 연방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1963년에는 신헌법을 제정하여 국명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개칭되었다. 티토가 사망(1980)한 뒤, 민족분규를 겪게 되고 소련 해체와 더불어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되면서 유고연방을 이루었던 각 공화국이 독립의 길을 가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 뿐 아닌 발칸반도의 각 민족들은 독재에 항거하기도 하고, 제 민족, 제 지역의 이익을 지키고자 독립을 하기를 원하게 된다. 특히 정치적으로 연방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는 이런 저런 이유로 같은 민족끼리 독립을 원하고, 그 독립 세력을 반대하기도 하면서, 극렬하게 분열과 대립 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1>

국가명

종교

종족

슬로베니아

가톨릭 58%, 동방정교 2%, 이슬람교

슬로베니아인 83%, 세르비아인 2%, 크로아티아인

크로아티아

가톨릭 88%, 정교 4%

크로아티아인 90%, 세르비아인 5%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이슬람교 40%, 정교 31%, 가톨릭

보스니아인(남슬라브인이나 대부분 이슬람교도) 48%, 세르비아인 37%, 크로아티아인

몬테네그로

가톨릭, 정교, 이슬람교.

몬테네그로인 43%, 세르비아인 32%, 보스니아인

세르비아

정교, 이슬람교,

세르비아인 66%, 알바니아인 17%, 헝가리인

알바니아

이슬람교 70%, 정교 20%, 가톨릭

알바니아인(유럽의 유일한 무슬림) 95%, 그리스인 3%

마케도니아

정교 65%, 이슬람교 33%

마케도니아인 64%, 알바니아인 25%, 터키인남슬라브어

불가리아

정교 83%, 이슬람교 12%

불가리아인 84%, 터키인 9%

루마니아

정교 87%, 개신교 8%, 가톨릭

루마니아인 90%, 헝가리인 7%, 로마인

 

유고연방

1개의 국가 안에 2개의 문자(칼릴문자와 러시아문자), 3개의 종교(그리스 정교, 카톨릭, 이슬람교), 4개의 언어(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슬로베니아어, 마케도니아어), 5개의 민족(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마케도니아인, 몬테네그로인)과 6개의 공화국(세르비아공화국, 몬테네그로공화국, 크로아티아공화국, 슬로베니아공화국, 보스니아공화국, 마케도니아공화국)

 

< 참고 자료 2>

http://blog.naver.com/vivamd/10116332875(유럽의 화약고가 된 배경과 유고내전을 중심으로)

http://nppdj.tistory.com/164 (유럽의 화약고가 된  실제적인 이유)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JK015&qid=40qJx&q=%EC%9C%A0%EB%9F%BD%EC%9D%98+%ED%99%94%EC%95%BD%EA%B3%A0&srchid=NKS40qJx(간략페이지)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칼레메그단 요세 입구

요새 안  3세기에 세워졌으나, 수 많은 전장이 되었던 곳.

  칼레메그단 요세에서

베오그라드의 중심가에서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베어있는 부서진 건물 등이 산재한 도시가 베오그라드다)

 

세르비아인의 약 1/4이 세르비아 이외 지역에 살고 있으며, 대다수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에 거주한다.

(1.세르비아 몬테네그로:667.5만 2.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148만 3.크로아티아:20만 (2004, 1991년에는 58만) 4.독일 25-70만)

코소보와 보이보디나 지역을 제외한 세르비아 본토에서는 세르비아인이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한다.

1990년대 많은 세르비아인이 코소보 지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알바니아인이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알바니아인의 높은 출생률과 민족주의의 등장으로 인해 코소보를 세르비아의 일부분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세르비아 측과 알바니아인 사이에 갈등을 빚고 있다.

 

사라예보(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의 세르비아 청년이 당시 이 지역을 점령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페르디난트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라틴다리(위)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 전쟁으로 인해 세르비아 인구의 23%가 희생되었다. 박물관(아래 사진)에는 당시의 상황과 관련된 전시물이 있다.

 

모르타르(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도시,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다)의 스타리 모스트(다리이름) 1556년에 건설된 다리로 보스니아 내전 때  이 다리의 사진의 왼쪽에 살던 크로아티아인(카톨릭)들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함께 거주하던 헤르체고비나인들(이스람교)의 인종청소를 시작했다. 스타리 모스트를 비롯한 이슬람 지역의 많은 모스크를 파괴했다. 2004년 복원됨.  

스타리 모스트(오스만 투르크가 남긴 발칸의 최고의 걸작이라고 함) 에서 바라본 강과 다리

  무슬림 보스니아인(44%), 세르비아 정교회 세르비아인(31%), 가톨릭교 크로아티아인(17%) 등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유고슬라비안 공화국은 1992년 2월 29일에 독립을 위한 국민 투표를 실시했다. 하지만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들은 이 투표를 보이콧했으며 자신들만의 공화국인 스프르스카 공화국을 설립하였다. 독립을 선언한 후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의 세르비아 정부의 후원을 받은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 군대들과 유고슬라브 국민의 군대(JNA)는 세르비아 민족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을 공격했고, 곧 전쟁은 보스니아를 가로질러 확산되었고, 특히 동부 보스니아 지역에서 인종 청소가 이루어졌다. 크로아티아인들은 1994년까지 독자적으로 싸워왔지만, 1994년부터는 보스니아와 NATO와 같은 편이 되어, 세르비아와 싸웠다. 결국 보스니아는 독립하게 된다.

 

  보스니아 내전은 20세기 인류사에 가장 잔인한 전쟁으로 기록된다. 인종청소에 의한 집단 학살이 많았고, 특히 부녀자들은 세르비아계 무장세력의 성폭력 희생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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