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목요일, 경동친구들의 갑작스런 만남이 있었다. 낮에 만나기로 하더니, 누군가의 일정으로 부득이 저녁으로 미뤘다는 YH의 전화다.
덕분에 아침나절 전화 온 옛 동료 IIO의 주선으로 늘 만나는 셋이 점심 약속을 했다. 안부가 있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각자의 시각이 잠깐의 화재가 된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 위정자들의 행태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이 난다. 나는 뉴스든 토론이든 드라마든 잘 듣고 보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첫째는 너무 처절하고 불행한 사건 일색이라서 그렇고, 그런 사실을 안다한들 내가 개입하여 뭔가 해결하고 처리할 영역이 아니라서가 두번째, 마지막으로 거짓이 난무하여 그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 하며, 세상일의 화재는 우리 사는 이야기로 돌아온다. 그래서 이어진 이야기가 우리집 혼사에 대한 배경이다. 조용히 치루려한다는 내 생각에 선배는 "그냥 다른 사람들 처럼 알릴 건 알려."라는 충고다. 밥값은 IO가 지불하고 茶는 WHS씨가 샀다. "돈 버는 나를 재치고 왜 두 사람이 지갑을 여냐?" 하니 나중에 큰 거나 내란다. ^^ 삶에 대한 이야기를 여과 없이 쏟아내도 흠 잡힐 일 없는 사람들이다.
저녁에 약속이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한 터라, 늘 하던대로 그 장소까지 바래주다보니 양재에 6시 30분까지는 촉박해졌다.
사실, 길이 막히지 않음 충분히 갈 거리인데 퇴근 시간이니 말이 아니다. 교통정보가 반영된 너비게이션은 그 나마 나은 길로 안내하나본데 빙글빙글 돌아돌아 겨우 7시에나 도착이다.
경동친구들, 삶이 망망했던 그 어린 한 때에 잠깐 교회의 중고등부 집단에서 함께 했던 이들이다. 처지가 그들과 달랐던 나는 자주 접하지 못하고 뜨믄뜨문... 여유있게 입시 준비를 하는 고3의 그들에 비해 나는 취업를 하려 하고 있을 때였다. 학비를 제대로 주지 않던 아버지 덕에 학교를 다니는 것 조차 힘든 때... 그래도 친절하고 독실했던 그리고 나름 절친인 SH 덕에 경동의 맥이 이어졌다. 미국에 사는 SH는 1980년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길에 오르기 전까지 아니 입대하기 전까지 유재복 샘에게 과외를 받던 그 친구 몇과 자주 만났고, 내 힘든 많은 이팔청춘의 시간들은 그들과 접하며 정상적인 젊음의 향연을 가질 수 있게 했다. 그 인성을 좋아했던 그래서 이성간의 친구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친구다.
이 친구들은 대부분이 여전히 경제적으론 여유로워 보인다. 남친들은 40년 만에 만났으니, 나를 알아보는 이도 있고 모르는 이도 있다. 고3때 하늘로 가버린 친구 이야기, 크리스마스 날 이야기 등 공통 화제로 동고동락 했던 일을 확인해 본다. 노래방에서도 흔드는 노래, 막가는 가요를 부르는 사람은 나 뿐, 젊잖아야 되는 사람들이 만났다는 느낌? 살랑살랑 흔드는 내 모습을 보고 HP는 "술도 못먹는 애가 뭔 ?...."한다. ^^
세월이 흘러 이젠 부모 세대가 아닌 우리 세대로의 삶으로 선 사람들 틈에 내가 있다. 각 부모의 영향으로 젊어 살아온 가정환경은 달랐지만, 그 자리에 아무 걱정 근심 없이 심신의 여유로움과 함께 같이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이 인다. 동창들은 만난 듯, 같은 젊은 날 함께 한 끈이 친함과 친하지 않음을 비껴서 하나의 묶음을 결성하고 있다. 젊은 때는 많은 접촉으로 길을 열어놔야 풍성해질 것 같다. 그 속에는 올바름과 반듯함이 있어야 후에 좋은 열매로 자리잡는다.
그 저녁 돌아오려 차에 앉아 전화기를 확인하니 그 중 쪽지 하나, 15년 가까이 소식을 전하고 사는 학부모 중 한 사람이 보내온 거다. 쓰러져 8년 간을 누워서 병치레를 했던 JB의 아버지가 사망하였다는 .... 바로 장례식장으로 간다하니 다음 날 2시에 만나기로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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